-포기해라, 필멸자여. 고작 인간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고, 주변을 불태우는 화염의 연기에 눈이 따갑다.
목소리도 내기 힘들 만큼.
고통의 비명을 내 지를 힘조차 없다.
-사.. 살려줘.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살려달라고? 적에게 목숨을 구걸해서 살아봐야...'
-크크크크큭. 네 꼴이 우습구나. 네 동료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았거늘. 목숨을 구걸하다니. 유희로다.
알겠다. 살려 보내 주마.
'제.. 젠장..'
살려준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됐다.
-종말은 다가오고 있다. 살려 보내주는 것은 이 번뿐이니, 설치지 말고 종말을 맞이해라 푸하하하
-으아아아아아악!!!
쿵.
"오빠!! 잠꼬대 좀 적당히 해!!!"
동생의 고함에 정신을 차렸다.
'시발, 또 악몽을..'
세면대에서 얼굴에 찬물을 끼얹자, 조금 진정이 됐다.
몇 번이고 똑같은 꿈을 꾼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용하다는 당집도 가봤다.
-우리, 신령님이 체념하라고 하시네. 넌 살아있어도 산 게 아니라고. 얌전히 지내면 편하게 죽을 수는 있다네.
더러운 기분에 다른 집도 가봤지만, 비슷한 내용이었다.
도대체 무슨 꿈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평범한 회사원일 뿐인데. 마치 애니의 한 장면처럼.
동료들과 악당에 맞서고 매번 비굴하게 나만 살아남는다.
'기분은 더럽지만..'
어쨌든 오늘을 살아야 했다.
-진혁아, 어떡하냐? 우리 이번에 주문 넣은 물건들 화물차 사고로 다 파손 됐다는데?
평소에 얄밉기로 소문난 김 과장이 캔커피를 건네며 이죽거렸다.
-내가 알기로 이번에 일정이 급하다며? 내 거래처 소개 해 줄까?
보나 마나 이걸 빌미로 또 뭔가 요구할 생각이겠지.
"일단, 사고 수습이 먼저죠"
오늘도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우편함에 꽂혀 있는 봉투가 시선을 끌었다.
보라색 봉투.
겉면의 보낸 이는 공란.
받는 이는
목숨을 구걸해 혼자 살아남은 비겁한 새끼님께.
라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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